서울역사

[역사] 육조거리, 조선판 광화문광장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기록: 서울역사 에디터
지금의 광화문광장 자리에는 조선의 최고 관청 6개가 일렬로 늘어선 육조거리가 있었습니다. 왕과 백성이 직접 마주쳤던 이 거리의 600년 역사를 파헤칩니다.

조선 최고 권력기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던 국가의 심장부, 육조거리의 600년 역사를 소개합니다.

항목 내용
위치 현 광화문광장·세종대로 일대
존속 기간 1395년 ~ 1910년대
주요 관청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철거 시기 일제강점기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인 광화문광장이 예전엔 장관님들이 바삐 움직이던 관청가였다니 정말 신기하죠?

광화문광장 아래 잠든 600년의 관청가

지금 광화문광장에 서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입니다.

주말엔 각종 행사가 열리고, 평일엔 직장인들이 바삐 오갑니다.

그런데 이 자리가 600년 전 조선 최고 권력기관들이 줄줄이 늘어선 **'육조거리(六曹街)'**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 지금의 세종대로 방향으로 뻗은 이 길은, 조선시대 내내 왕국의 심장부였습니다.


육조거리란 무엇인가

'육조(六曹)'란 조선의 중앙 행정을 담당한 6개 핵심 부처를 말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정부세종청사나 광화문 정부청사 역할을 했죠.

이 6개 관청이 광화문 앞 대로 양쪽에 좌우로 나뉘어 배치됐습니다.

동쪽에는 이조·한성부·호조·사헌부가, 서쪽에는 의정부·예조·병조·형조·공조가 자리했습니다.


이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신문고(申聞鼓)가 울리는 곳

억울한 백성이 직접 왕에게 호소할 수 있는 북, 신문고가 바로 이 거리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치기 위해선 지방 관청과 사헌부를 먼저 거쳐야 했기 때문에 일반 백성이 접근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하지만 제도 자체가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위치가 최고 관청이 모인 이 거리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과거 합격자 발표 퍼레이드

과거 시험에 합격한 선비들은 이 육조거리에서 어사화(御賜花)를 머리에 꽂고 말을 타고 행진하는 '유가(遊街)' 행사를 벌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합격 퍼레이드죠.

한양의 최고 번화가를 통과하며 가문의 영광을 온 동네에 알리는 행사였습니다.

왕이 직접 행차하는 길

왕이 종묘, 사직단, 또는 남쪽 능으로 행차할 때 이 육조거리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거리는 통제됐고, 구경 나온 백성들이 양쪽에 늘어섰습니다.

왕과 백성이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 바로 이 거리에서였습니다.


육조거리의 소멸 — 일제가 지운 조선의 행정 심장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육조거리의 관청들을 하나씩 철거하거나 용도 변경했습니다.

1926년에는 경복궁 앞마당 한가운데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워 경복궁의 축을 완전히 가로막았습니다.

조선의 통치 공간을 시각적으로 지워버린 것입니다.

1995년 총독부 청사가 철거됐고, 2009년 광화문광장이 조성됐습니다.

땅 밑에는 아직도 조선시대 관청 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광화문광장 공사 중 조선시대 유구와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남은 흔적

육조거리는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았습니다.

지금의 세종대로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리고 광화문 앞에 복원된 월대(月臺)는 왕이 백성과 마주하던 공간을 되살리려는 시도입니다.

광화문광장에 설 때마다, 이 땅이 600년간 조선의 행정 심장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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